그릇
그릇
예수님께서 바울을 부른 목적에 대해 말씀하실 때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고 하신다.
그릇은 담는 것이 목적이다. 무엇을 담기 위함일까?
예수 이름. 복음을 담기 위함이다.
그런데 담는 것만이 목적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담아서 먹이기 위함이다. 누구에게?
이방인과 왕들과 유대인들(행9:15)이다.
나에게 담아 주심은 남에게 먹이기 위함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에게 담겨진 것이 남에게 먹여지기 위해서는
내가 기울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 중심이 흔들리고, 내 안정감과 내 익숙함이 모두 흔들린다.
그래야만 내 안의 것이 남에게로 흘러 들어간다.
그릇을 기울이지 않고 어찌 그 안의 것을 남에게 마시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기울어짐에 있어서 한 방향으로만, 동일한 각도로만,
반복적으로 기울어진다면 조금이나마 수월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예측할 수 없게 전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각도도 다양한 각도로 기울어지는 상대방 맞춤형 그릇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유연성을 기르는게 관건이다.
180도까지 기울어질 수 있다면 90도 쯤이야 우습다.
후훗.
하나님이 나를 많이 기울어지게 하신다면
그 말은 곧 지금 내 앞에 있는 자에게 많이 먹여주고자 하심이니
‘저 사람도 장차 나처럼 크게 쓰일 그릇인가보다.’
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넉넉하게 기울어지자.
만약 이 역할이 싫다고 안 기울어지기 시작하면
다시 말해서 유연성이 사라지고 뻣뻣해지고 딱딱해지면
기어코 안에 담겨있는 것을 남에게 흘려보내려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그릇을 깨뜨려서라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파삭!’
에고 이 소리는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주님! 나를 그릇으로 만드신 주님께서
담으시고 먹이시기에 편하시도록
깨끗하면서도 잘 기울어지는 그릇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더 겸손히 더 온유하게.
더 낮추고 더 맞추며.
박선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