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정성을 담아
조금 더 정성을 담아
반복적인 생활 패턴이 몸에 베이다 보니 아침에 눈을 뜬 후
저녁에 눈을 감기까지 맡게되는 모든 일들에 똑같은 마음이 적용됩니다.
‘얼마나 효율적인가?’ 짧은 시간에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효율성을 따져봅니다.
‘얼마나 효용이 있는가?’ 내가 시간을 들인만큼 만족하게 될까? 후회하지는 않을까?
더 많은 보람과 만족을 얻기 바라며 효용성을 따져 봅니다.
효율적이지 않거나 효용성을 기대할 수 없을 때, 대강 대강 하는 일은 귀찮을 뿐이고
시간낭비로만 여겨집니다. 마음은 멀어지고 행동은 흐느적 거립니다.
효율, 효용, 귀차니즘. 우리 마음에 있는 세 가지 잣대입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똑 같은 마음과 자세입니다.
그런데 생각 해 봅시다. 이 습관 때문에 사소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사소한 것이 시시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작은 정성이 인생을 더 좋은 방향으로 틀어주기 때문이지요.
형들만 사랑하는 아버지가 던져 놓으시듯 막내에게 맡긴 양 때들,
어떤 효용도 기대되지 않지만, 다윗은 정성을 담습니다.
양을 물어가는 사자나 곰과 목숨 걸고 싸우기 까지 하며 양 때를 사랑합니다.
시냇가에서 매끄러운 돌을 고르는 눈썰미를 습득하고, 물매 던지는 기술도 연마합니다.
양 때를 향한 작은 정성이 낳은 행동들 이었죠.
그런데 그것이 훗날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힘이 되고, 그로인해 다윗은 왕이 됩니다.
사소한 것을 시시하게 여기지 마세요.
귀차니즘 때문에 구겨서 버리는 그 쓰레기 안에 ‘왕이 될 기회’도 함께 버려질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정성을 담는 자세가 몸에 베이게 하십시오.
정성 플러스. 이것이 여러분의 삶에 복과 은혜를 플러스 해줄 것입니다.
박선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