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겨자씨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13:31-32)
시인의 말 가운데 ‘씨앗을 손에 들고 새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이야기입니까?
심어 놓으면 싹이 날 것이고, 자라고 자라면 새들이 올 것입니다.
씨앗을 보면서 새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겨자씨를 보면서
새 소리를 들으시던 예수님의 말씀과 그 놀라운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떠오를 때 소낙비 소리를 들었던 엘리야(왕상 18:44)도
미래를 보았던 사람입니다.
성도의 눈은 환상을 보는 눈입니다.
지금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그 다음을 봅니다.
그 시선이 천국에 까지 이릅니다. 그래서 온유하며 고요하며 평안하며 지혜롭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두가 두려워하며 움츠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염병을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다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사건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진정한 불행은 미래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천국까지 이르는 우리의 시선은 현재의 고난을 ‘잠깐’으로 여길 수 있는 힘을 부여합니다.
성경을 보면 두 종류의 ‘잠깐’이 나옵니다.
‘잠깐’ 견디다가 곧 넘어지는 자가 있고(막 4:17),
‘잠깐’ 근심하다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자가 있습니다(벧전 1:6).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소망’입니다. ‘다음’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이 눈은 영적인 기능입니다. 부디 육신과 환경의 상태에만 민감하지 마시고
영적인 눈으로 다가올 미래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박선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