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이해력
영적 이해력
유진 피터슨은 ‘지식’(벧후1:5)을 ‘영적 이해력’으로 번역했습니다.
저는 이 번역이 참 마음에 듭니다. ‘영적 이해력’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예수님과 연관해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2차원적 이해의 범주에서 4차원적 영적이해로 깊이 들어가게 되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던 일이 이해가 되고 수긍이 되고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성경에서 이해되지 않는 일을 영적 이해력으로 극복해내서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두 요셉이 아닐까요?
구약의 요셉은 형제들에게 팔려 노예가 된 사람이고,
신약의 요셉은 약혼한 여인이 임신을 했는데 남자를 모른다고 하는 상황을
풀어나가야 했던 사람입니다.
구약의 요셉은 평생 형들을 증오하며 한 맺힌 삶을 살고,
신약의 요셉은 안 좋은 꼬리표로 남을까봐 조용히 헤어지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요셉은 오히려 형들을 불쌍히 여기며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있습니다.
신약의 요셉도 약혼녀를 품어주고 감싸주며 아들을 낳도록 도와줍니다.
처음에는 가만히 끊고자 하여 ‘어떻게 잘 끊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의 사자의 현몽을 통하여 계시의 빛이 그의 생각에 비추어질 때
그는 영적 이해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전혀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인류의 구원자인 예수님의 아버지가 됩니다.
요셉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더하신다”입니다.
‘내 생각에 하나님을 더 하면, 하나님의 것이 내게 더해지는 복을 받습니다.’
십자가는 빼기가 아니라 더하기입니다.
가시밭길이든 꽃길이든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고 있음을 알게 해 주는 영적지식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박선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