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냉장고에 쏟다
김치를 냉장고에 쏟다
가끔은 아침에 라면이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마침 아내가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온 후 피곤해서 아침을 챙겨주지 못하는 틈을 타서 제가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교회 출근을 해야 해서 아침을 먹고 출근해야 든든하기 때문이죠.
보글보글 끓는 물에 라면면발과 스프를 넣고 계란을 투하한 후 적당히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라면에는 김치가 필수죠. 냉장고를 열어 김치를 꺼냅니다.
평소와 다르게 큰 접시에 김치가 담겨있고 플라스틱 덮개가 씌어져 있네요.
그 안에 가지런히 썰려있는 김치를 보며 아내의 준비성에 감탄도 해봅니다.
조용한 아침에 혼자 식탁에 앉아 조간신문을 읽으며 먹는 라면 한 그릇은 참 맛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국물까지 후루룩 마신 후 이제 식탁을 정리합니다.
그릇들을 모두 치우고 마지막으로 김치를 냉장고에 넣습니다.
그런데 냉장고 문을 열고 김치를 넣으려는 순간 플라스틱 덮개를 잡고 있던 손가락이 미끄러지면서
그만 접시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앗! 슈웅~(접시가 낙하하는 소리) 챙그랑! 퍽! 퍽!
접시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그 안에 있던 김치들이 여기저기 떨어지고 빨간 국물들이 냉장고안에 사정없이 튀면서
수많은 파편들을 만듭니다. 이런! 아내가 깨끗하게 닦으며 관리하는 냉장고가 온통 김치국물과 김치 잔해로
시뻘겋게 색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김치 국물이 서랍사이 틈새로 새어 들어가면서
더 심각한 사태를 만들어 냅니다. 아이고! 머리가 띵! 해집니다.
조금 전까지 라면 한그릇의 행복을 만끽하던 감정은 모두 사라진채 당황스러움과 속상함과 황당함이 뒤 범벅이 돼서
안절부절 합니다. 이걸 어떻게 하지? 피곤한 아내를 깨워서 뒤처리를 부탁하고 출근해야 하나?
아니야! 내가 일을 저질렀으니 내가 해결해야지! 와! 그런데 이걸 어떻게 다 치우지!
행주를 가져다가 한칸 한칸 정리를 하면서 몇가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1. 이런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해야겠지? 항상 기뻐해야 하니까. 범사에 감사해야하니까.
2. 남 탓보다는 내탓을 해야겠지? 왜 김치를 이렇게 큰 접시에 담아놨나? 왜 미끄러운 프라스틱 덮개로 덮어뒀나?하고
아내를 탓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내가 좀더 조심하게 다루지 못했다.'하고 내 자신의 부 주의를 탓해야겠지.
3. 하나님은 출근을 앞두고 바쁜 나에게 왜 이런 경험을 하게 하실까?를 생각해 보자.
음... 이번 주 칼럼을 쓰기위해 고민하고 있는 걸 아시고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주시는건 아닐까?하고 생각했습니다.
4. 그래서 내긴 결론은 “그래, 이 이야기로 칼럼을 써보자”입니다.
행주를 몇 번 빨아서 냉장고를 왕복하는 동안 김치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원래의 깨끗한 냉장고로 복원이 되었습니다.
모든 상황은 종료�죠. 그리고 저는 교회에 늦지 않게 출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만약에 제가 아내를 깨워서 정리하는 것을 떠 넘기고나왔다면 나중에 부부싸움이 일어날수도 있었겠죠.
아내에게 '왜 큰 접시에 김치를 담아두고, 미끄러운 플라스틱 덮게를 씌웠느냐'고 탓을 돌렸다면 아내는 깊은 상처를 입었겠죠.
아니면 저 혼자서 “에이, 오늘 일진이 안좋네. 오늘 하루가 기분이 더럽겠다.” 뭐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품었다면
오늘 하루는 완전치 망쳐진 하루가 �겠죠. 그런데 다행스럽게 저는 그 순간 말씀을 떠올렸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마음도 편하고 오히려 그 경험을 통해 칼럼도 쓰게되었네요. 하하하.
오늘 하루 참 즐겁네요. 하하하.
박선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