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를 떠나 보내며
병아리를 떠나 보내며
큰아들이 생물학과에서 공부 하다보니
집에 오면 여러 가지 실험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올챙이가 알에서 부화된 이야기, 개구리를 해부한 이야기,
거머리보다 진드기가 더 해롭다는 이야기,
그중에 백미는 계란에서 부화되는 병아리 이야기입니다.
계란의 껍질을 깨트리고 그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생명을
핀셋으로 건드릴 때 깜짝 놀라듯이 반응하는 신기한 장면을
자신의 스마트폰에 영상으로 담아두고 종종 들여다봅니다.
‘아빠! 이것 좀 봐!’하면서 보여주는데 솔직히 끔찍해서 눈을 감을 뻔 했습니다.
그래도 태연하게 “야! 근사한 실험이네!‘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깜놀이었습니다.
그런 실험을 거쳐 새마리의 병아리가 태어났습니다.
껍질을 부수고 나오는 모습이 조폭 같다고 해서 이름붙인 ‘두한’이를 시작으로
‘뿡알이’와 ‘노랭이’. 사내 둘, 여인 하나.
착한 아들은 이 세 마리의 엄마가 된 것처럼
그 누구에게도 보내지 못하고 라면박스에 넣어서 조심조심 가슴에 품고
천안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아들의 그 마음을 모질게 거절하지 못한 아내는 방 한개를 비우고
그곳에서 새 마리의 병아리가 지내게 해 줍니다. 물론 박스안에서요.
아침저녁으로 모이를 주고 물을 주고 쓰다듬어 주는 몫이 아내의 것이 되었습니다.
새벽기도 후 현관문을 열자마자 배고프다고 밥 달라고 삐약! 삐약! 삐약!
점심이 되면 심심하다고 놀아 달라고 삐약! 삐약! 삐약!
저녁이 되면 또 밥 달라고 삐약! 삐약! 삐약!
아내의 지극정성의 돌봄과 종종 전화로 병아리들의 안부를 묻는 아들 때문에
참고 또 참으며 보낸 세월 1개월 남짓!
아! 드디어 일이 터졌습니다. 두한이를 필두로 힘찬 날개짓을 하며
날아오르기 시작한 녀석들이 높디 높은 라면박스의 벽을 뛰어넘어
거실 바닥으로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향기로운(?) 배설물을 퍽! 퍽! 투척하며 온 집안을 돌아다닙니다.
쇼파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삐약! 하길래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니
세 녀석이 깜박거리는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즉시 아내에게 전화를 합니다! “여보! 어디야! 빨리 집으로 와 봐!”
남편의 기겁하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아내도 여기까지가 한계였나 봅니다.
다음날 세 녀석이 들어있는 라면박스가 아내의 손에 들려 교회 주차장으로 옮겨졌습니다.
수소문한 결과 노 권사님이 아시는 분에게 드리기로 했답니다.
이상합니다. 시원할 것 같았던 마음이 웬지 모르게 아쉽고, 아들에게 미안하고
아내에게도 눈치가 보입니다. 떠나간 세 녀석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좋은 주인을 만나서 사랑받으며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떠나 보내야 겠지요?
박선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