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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없는 성탄의 비극

  • 정현철
  • 2022.12.19 오전 09:48

오늘은 마태복음 219절부터 214까지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님 없는 성탄의 비극이라는 주제로 말씀하신 담임 목사님의 은혜로운 설교 말씀을 옮깁니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인 약혼자 요셉은 마리아를 부끄럽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남몰래 파혼하려고 마음먹었다.

요셉이 이 일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하였다.

'다윗의 후손 요셉아,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라.

그녀가 임신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불러라.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복음 2:19~21)

 

오늘 아침 온도가 14도인데 가장 추운 날에다 예배를 사모하여 보인 여러분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달라스 신학대학교 찰스웬들 목사님은 성도의 깊은 삶속에서라는 책이 이야기입니다.

어느 백화점에서 아기 인형을 만들어 놓고 세탁하여도 변질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광고를 하였지만 잘 팔리지를 않았습니다.

그러자 대대적인 광고도 하였고 게시판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50% 눈물의 바겐세일 이라고 광고를 하였지만 팔리지를 않았습니다.

백화점에 가보면 크리스마스 포토존이나 캐롤이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정작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성탄 카드 중 100장에 1장 정도가 팔리고 있습니다.

성탄을 축하하는 카드 5,500장 중 예수님의 성탄을 디자인한 카드가 70장에 불과합니다.

성탄을 축하하는 카드에 예수님은 거의 사라지고 농담, 유머, 유명한 인사들의 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카드가 좋다고 사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성탄절을 기념하는 카드에는 주인공인 예수님이 나타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성찬절이 휴일(休日), holiday이다.

크리스마스 때는 가족이나 친한 이들과 함께 즐기며 보내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하면 생각나는데 산타할아버지, 트리, 파티, 공연이 생각이 날 것입니다.

또한 가족과 소중한 추억을 쌓거나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거나 세계적인 축제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예수님의 생일이라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의 시선과 관심은 무엇에 쏠려있을 것인가?

궁금증을 풀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신구약 중간시대를 알아야 그 시대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한 세 부류의 사람들을 봅니다.

 

첫째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입니다.

이들은 그 당시 예배를 주관하였던 자들로 예수님의 탄생을 정확히 알았을 정도로 지식이 뛰어났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에서 가장 작은 마을 중의 하나이지만 너에게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올 것이다.

그는 영원 전부터 있는 자이다.'>(미가서 5:2)

그러나 그들은 머리로만 알았지 실제적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보서 2:25)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는 마땅히 행할 일도 있는 것입니다.

귀신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둘째로 여관집 주인입니다.

<여관에는 사람이 다 차서 있을 곳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마굿간에 머물게 되었다.

거기서 마리아는 첫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누가복음 2:7)

여관집 주인은 빈방이 없다고 마리아에게 방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호적을 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와서 빈방이 없었으므로 방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오늘에 비유하면 물질, 바쁘다는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관심이 너무 바쁘고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살지는 않은지요?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께 나아와 예물을 드리고 경배를 하였습니다.

<그 별을 보고 박사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 아기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에게 경배한 후 보물 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드렸다.>(마태복음 2;10~11)

 

셋째로 헤롯입니다.

영웅의 아들이란 뜻. 이두매(에돔) 출신(이방인)으로서 팔레스타인과 그 인접 지역을 통치했던(B.C. 47 - A.D. 70) 헤롯 가()에 속한 자들을 일컫는다.

헤롯 가문(家門)헤롯 안티파테르 1’(Herod Antipater )에 의해 창시되었다고 본다.

그는 B.C. 1세기 초 하스몬 왕조의 알렉산드로스 얀나에우스에 의해 이두매의 장군으로 등용되었다.

그 아들 안티파테르 2’(Antipater )가 그의 뒤를 잇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B.C. 47년에 안티파테르 2세를 유대의 행정장관(징세관)으로 임명하여 그로 하여금 유대 지경을 다스리게 했다.

그로부터 헤롯 왕가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고자 유대교로 개종했으나 그와 그 후손들은 이두매 출신이방인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는 생전에 두 아들(파사엘과 헤롯)에게 중요한 직책을 맡겼는데, 파사엘에게는 예루살렘을 통치하도록 했고, 헤롯(후에 헤롯 대왕’)에게는 갈릴리 총독을 맡겼다. 헤롯을 보라.

 

1.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 안티파테르 2세의 다섯 자녀 중 차남(次男)으로서, B.C. 47년 갈릴리의 첫 번째 총독이 되었다.

그는 총독 부임 직후에 일어난 산적 에케키아스의 난을 제압함으로써 유대인들과 로마 당국의 지지를 함께 이끌어낼 수 있었다.

B.C. 40년에는 로마 황제 아구스도에 의해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유대는 3년에 걸친 내전(內戰) 상태에 놓였던 관계로 B.C. 37년에 이르러서야 로마군의 협조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던 파르티아 군대와 하스몬 왕가의 안티고누스 왕을 물리치고 실질적인 유대인의 왕이 될 수 있었다.(B.C. 37-4)

유대의 왕이 된 후에도 하스몬 왕가의 잔존 세력에 의해 견제를 받아 폐위 위기까지 가기도 했으나 그의 이용 가치를 높이 평가한 로마 당국에 의해 복권되어 B.C. 23년을 전후한 시기에 지난날 다윗 왕국의 판도와 거의 맞먹는 넓이의 영토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견제 세력이었던 산헤드린에게서 정치적 권력을 빼앗아 순수한 의회 기능만을 유지하게 했고, 또 대제사장도 단순히 종교적 기능만을 하도록 제한했으며, 대제사장 임면권을 자신이 가지기도 했다. 특히 그는 각종 건축 사업에 진력했다.

요새지 건설, 저수지와 수로 확충, 경기장, 궁전, 극장 건설 그리고 사마리아와 여리고 등의 도시 건설에 힘을 쏟았다.

 

특히 그는 지중해 연안의 조그만 항구 도시를 큰 항구로 만들어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그 이름을 가이사랴로 명명했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라는 대 공사(B.C. 20년경에 시작하여 그의 사후 A.D. 64년경에 완공됨)를 펼치기도 했다.

한편, 그는 평생 자신의 정체성(유대인 통치자이면서도 이방인이었음)에 대한 한계를 느꼈으며, 이를 극복하고자 유대 순수 혈통인 하스몬 왕가의 딸인 마리암느를 아내로 맞아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으려 했다.

 

그는 아내를 지극히 사랑했지만, 자신이 잠시 실각한 틈을 타 마리암느와 숙부 요셉의 불륜을 의심하여(특히, 자신의 왕권을 노린다고 의심함) 그 두 사람을 처형시키고 또 마리암느의 남동생 아리스토불루스, 조부, 모친, 그리고 마리암느의 두 아들을 살해하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왕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접한 때에는 베들레헴의 어린아이들을 살육하는 잔혹성을 보였다.(2:1-18

B.C. 470세를 일기로 그가 죽자 그의 왕국은 세 아들(아켈라오, 헤롯 안디바, 빌립)에게 분할 통치되었다.

 

2. 아켈라오(Herod Archelaus) - 헤롯 대왕 사후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의 분봉왕(B.C. 4 - A.D. 6)이 되었고(3:1), 수많은 학살과 학정으로 로마 당국에 의해 공직에서 해임되어 고올 지방으로 추방되었다.

그가 유대의 왕이 되었을 때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가족을 데리고 갈릴리 나사렛으로 옮겨가 살게 된다(2:22).

 

3.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 -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B.C. 4 - A.D. 39)이 되었다.

성경에는 분봉왕 헤롯’, ‘헤롯 왕으로 언급된다.(14:1; 6:14; 3:19)

그는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한 후 이복형제인 빌립의 아내이자 자신의 조카인 헤로디아와 결혼했고, 이를 비난하는 세례 요한을 살해했다.(14:1-12)

교활하고 술수에 능해서 예수님으로부터 여우라 불렸다.(13:32)

 

그는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서 재판을 받고 넘겨진 예수님을 심문했고 예수님을 희롱한 후 빌라도에게 다시 넘겨주었다.(23:7-11)

그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갈릴리 해안에 디베랴라는 도시를 건설했고, 갈릴리 바다를 디베랴 바다로 명명하기도 했다.

그는 탐심과 병적인 잔혹성을 지닌 인물로 평가된다.(14:1-22; 23:7)

 

4. 헤롯 빌립 2(Herod Philip ) - 바타네아와 드라고닛, 가우라닛, 얌니아 지역의 분봉왕(B.C. 4 - A.D. 34)

헤롯 대왕과 그의 다섯 번째 아내인 예루살렘의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자로, 헤롯의 아들 중 가장 존경을 받았고, 37년간 영토를 평화롭게 다스렸다.

헤로디아와 결혼하여 딸 살로메를 낳았으나 계승자 없이 A.D. 34년 겨울에 율리아스에서 사망했다.

생전에 가이사랴 빌립보를 비롯한 수많은 도시를 건축하였다.

 

5. 헤롯 아그립바 1(Herod Agrippa ) - 헤롯 대왕의 손자이며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이다.

어린 시절 로마 황실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글라우디오가 로마 황제에 등극하는 데 일조했다는 이유로 헤롯 안디바가 해임된 후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후에는 유대와 사마리아 전역을 다스리는 팔레스타인의 통치자가 될 수 있었다.(A.D. 41-44)

그는 유대 지도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독교회와 대적하던 중 사도 야고보를 죽게 하였다.(12:1-23).

 

6. 헤롯 아그립바 2(Herod Agrippa ) 아그립바 1세의 아들. 부친이 사망할 때 겨우 17세의 나이였기에 부친이 다스리던 팔레스타인은 로마 총독의 직할이 되었고, 후에 칼키스 지역을 다스리다가, 뒤이어 갈릴리의 동부지역의 분봉왕이 되었다.(A.D. 53-70년경)

그는 누이 버니게와 근친상간하여 유대인들의 지탄을 받았다.

그는 가이사랴의 베스도 총독에게 문안갔을 때 사도 바울을 대면한 적이 있고, 그때 바울의 변론을 청취하게 된다.(25:13-26:29)

그는 바울의 무죄를 간파했으나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했기 때문에 석방시킬 수 없었다.(26:30-32)

그는 헤롯 왕가의 마지막 통치자로서 A.D. 70년 예루살렘이 패망하자 로마로 가서 로마의 행정관이 되었고 A.D. 100년경에 사망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헤롯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화가 났다.

그래서 그는 베들레헴과 그 부근에 사람들을 보내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기준으로 하여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마태복음 2:16)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라마에서 한 소리가 들리니 슬퍼하고 통곡하는 소리이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슬퍼하며 위로받기를 거절하는구나.'>(예레미야 31:15)

그는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하여 만왕의 왕으로 나신 예수님이 탄생하던 날로부터 2살까지 모두 죽였을 정도로 포악하였습니다.

지금의 통곡의 벽이 있던 장소가 헤롯이 지은 성전이 있던 곳입니다.

 

<예수님은 헤롯왕 때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때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찾아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에게 경배드리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마태복음 2;1~2)

헤롯은 자신이 왕이므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듣고 두려워하여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당대의 영웅이었지만 기독교적인 역사관도 없었으며 폭군이었습니다.

혜롯 가문처럼 예수님이 없는 인생은 그가 아무리 권세를 가지고 누린다고 하여도 쓸모가 없는 것들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면 손해를 본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인생을 즐길 수도 없고 자기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며 산다고 합니다.

예수님 없는 성탄절은 많은 사람이 지내고 있습니다.

일단의 사람들이 폭풍우가 치는 날 우산을 빌리려고 한 집에 들렀습니다.

그 집 주인은 허름한 우산을 빌려주었습니다.

며칠 후 감사장과 선물을 가지고 왔는데 거기에 엘리자베스 여왕이라고 싸인이 되어있었습니다.

만약 이분이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허름한 우산 하나를 빌려주었을까요?

 

우리들의 마음이 한밤중에 양을 치는 목자들처럼, 동방 박사들처럼, 시몬과 안나처럼, 마리와와 요셉처럼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산 사람들처럼 우라들도 예수님을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절기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낮고 낮은 곳 마굿간에 오신 예수님처럼 낮은 곳에서 겸손히 섬기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즐겁고 기쁘게 맞이하는 성탄절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웃고 웃는 즐거운 성탄절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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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님 없는 성탄의 비극
  • 20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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