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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부활

  • 박선타
  • 2024.03.26 오전 08:54

[진정한 부활]

 

예수님은 죽은 체 한 것이 아닙니다. 죽은 연기를 한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죽었습니다. 무덤에 묻혔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죽은 적이 있습니까? 저는 두 번 죽었습니다.

한 번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속 80Km 달리는 트럭에 정면으로 치여 죽었습니다.

놀랍게 20분 만에 깨어났습니다. 깨어나 보니 수십 명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또 한 번은 수련회 죽음체험시간에 관에 들어가서 누웠습니다.

스스로 죽었습니다. 네모나고 좁고 차디찬 관짝 안에 들어가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누웠습니다. 관 뚜껑이 덮이고 못이 탕탕박힙니다.

사람들이 제 이름을 부르며 슬피 웁니다.

칠 흙 같이 어두운 그 속에서 눈을 감습니다. 숨 쉬는 것을 멈추어 봅니다.

온 몸의 기운이 빠져나가고 몸이 솜털과 같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구름위에 누운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무념무상. 모든 생각이 비워집니다.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감정도 사라지고,

걱정도 염려도, 미움도 증오도 모두 사라집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말뿐인가요? 뇌가 멈추므로 생각도 없어지고,

심장이 멈추므로 마음도 없어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물이 납니다. 저 뿐만 아니라 관속에 누워 있다가 나온

모든 사람들의 눈이 퉁퉁 부어있습니다.

왜 울까요? 하고 싶은 것을 다 못하고 죽어서?

이루고 싶은 것을 다 못 이루고 죽어서? 그 아쉬움 때문에 흘리는 눈물일까요?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이루기 위해 희생시켰던 진짜 소중한 것들에게 미안해서

우는 것입니다. 아내를 더 사랑하지 못했고, 자식을 더 사랑하지 못했고,

부모님을 더 사랑하지 못했고, 친구와 이웃을 더 사랑하지 못했음이

후회되어서 우는 것입니다.

죽으면 한 줌도 가져가지 못하는 그깟 땅을 위해, 집을 위해, 의복을 위해,

돈을 위해, 지위와 명예를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경쟁하고 싸우고 다투고

아등바등 거리며 살아온 삶이 너무 어리석고 바보 천치 같은 삶이었음이

깨달아 져서 우는 것입니다.

죽으면 모두 헛된 것이 되는데 왜 그런 헛된 것들을 위해 목숨과 시간을 허비하며

다른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와 아픔과 고통만을 남기며 살아왔을까?

이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모든 쓴 뿌리와 엉겅퀴에서 해방됩니다.

현대인의 성경 전도서 7:4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눈 앞에 보이는 즐거움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예수님은 매일 죽음을 묵상하며 사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날마다 죽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여기까지 닮아야 합니다. “전사(全死)가 전활(全活) 합니다.”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은 자만이, 완전한 생을 얻는 부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죽음에 성공하십시오. 그래서 날마다 부활하십시오이것이 진정한 부활 입니다.

 

박선타 목사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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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정한 부활
  •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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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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