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lly
finally
기분이 우울할 때는 영화를 보라. 헤피엔딩으로.
기분이 들떠 있을 때도 영화를 보라. 세드엔딩으로.
삶의 다양성은 우리를 혼란스럽게도 하지만
그것을 활용할 줄 아는 힘을 가진 자에게는 스릴을 준다.
시속 30키로의 속도제한도 있지만
시속 110키로의 제한도 있다.
그 사이를 지나는 바람은 언제나 조용하며
그 위를 떠가는 구름은 언제나 포근하다.
동해의 푸르름이나 서해의 짙푸름이나
다름 속의 맛과 멋을 아는 사람은 그 차이를 행복해 한다.
어제의 우울함, 오늘의 불안함은 내일의 무엇이 될까?
무엇을 섞느냐에 따라 헤피와 세드가 결정된다.
우리를 등에 태우고 날아가시는 하나님의 방향은 어디일까?
나의 날개로 나는 듯 하지만 더 거대한 날개가 움직이고 있고,
나의 눈으로 보는 듯 하지만 이미 정해져있는 곳을 볼 뿐이다.
홍해를 걸어서 건너고
여리고성을 사뿐히 넘는
오직 연출자만 알고 있었던 그 비밀스러움을,
우리가 경험하게 될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
30키로이든 110키로이든
멈추지 않고 엑셀을 밟기만 한다면 결국은 도착하게 될 것이니
가끔은 헤피엔딩을 그리고 가끔은 세드엔딩을 생각하며
끝까지 가기만 해라.
결국은 마지막에 준비된 우물의 정중앙에 뛰어가 앉을 사람은
바로 그대일 테니까.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8:16)
브라보! 파이널리!
박선타 목사